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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세속성 - 펌(& 정리)

경빈박씨 2019. 10. 29. 22:19

글 : 호세 루이스 나르바하 (예수회)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로마 7,22-23)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기도한다. 

이 기도가 변화와 회심의 기도란 것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온다.

반면 바리사이는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데 이런 이에게는 변화의 자리가 없다. 

기도라기 보다는 혼잣말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1)


즉, 육체의 법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해결 방법은 '기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세속성에 빠지고 만다.


바리사이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면서 영적인 일에 헌신하고,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서 세상일에 헌신하는 사람(세리와 비슷한)도 있다. 이들은 바오로 사도의 "이제부터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29- ) 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이 두 부류는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되기 전 젊은 예수회원들을 양성 할 때, 베르골료는 "완덕의 삶을 살기로 서원한 사람들의 부패는 최악의 부패(corruptio optimi pessima)"라는 경구를 상기시켰다.


대주교가 된 후에도 여러 차례 영적 세속성을 다루며 이를 경계할 것을 말하였다.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영적 세속성에 빠지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세속성은 자신을 종이 아닌 주인공으로 여기거나 마르타처럼 너무 많은 일에 매여서 더 좋은 몫을 선택하지 못하거나,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고 그 빈 곳을 물질축적으로 채우려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 모습은 개인이나 공동체에도 해를 입힐 수 있음을 지적하신다.


이런 세속성의 '뿌리'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대적하는 미묘한 인본주의라고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미묘하다는 말은 전적인 거부가 아니라 

'영적인 것만 인정하고 육적인 것은 거부'하거나 

'하느님은 믿지만, 그분의 창조는 거부'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영적세속성은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지는 '나르키소스'처럼 

하느님과 단절된,

폐쇄적인 모습으로 열매맺는다.


-호세 루이스 나르바하 (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