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신학전망 197호
‘복음의 기쁨’과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by 정영란(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 트리엔트 공의회가 발표한 교리문답을 줄줄 외운들 그네들이 정작 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지는 않을 거야.
- 사제는 철학자들의 신을 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님’의 전달자이기를
- 합리주의자들의 언어만으로는 구원 신비는 전달 불가능하다.
- 곡학아세(曲學阿世) : 잘못 가르친 것은 (曲學) 곧 세상 사람에 대한 아첨이 되고 말 것이다.(阿世)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야 할 강단에서 입매를 암탉 부리같이 만들고 약간 들뜨긴 했지만 만족해서 내려오곤 하는 사제는 강론을 한게 아니고 그저 기껏해야 잠꼬대를 한 것뿐이야.
-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단한다.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 복음 말씀 중에서 자기네들 마음을 적셔 주고 시적인 부분만 짚어 내어... 되뇌는 것이 꾀바른 처세라고 믿는 걸 보면 나는 겁이 나네.
-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경우는 대충 넘어가고 말지...
- 하느님을 향한 증오는 늘 부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때 악마가 그(유다)에게 들어갔다.” 그렇다. 부마와 광기를 생각하지 ㅇ않을 수 없다.
- 그들이 죄에 대해 무엇을 안단 말인가? 그네들을 파먹는 암도 다른 많은 종기가 그렇듯이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다.
- 슬프다! ... 정신분석의의 말은 믿으면서 뭇 성인(聖人)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거의 무시하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무통(無痛) 속에 거져가는 죄에 대해 어찌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사제의 탄식
- 내 딸이여, 악은 그대보다 강합니다. 아가씨는 자기가 악마의 손아귀 바깥에 있다고 믿을 만큼 그리 교만하십니까?
- ‘악’의 세계는 요컨대 우리 정신으로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 누룩이 이미 없어진 반죽을 쓸데없이 주물러 대느라고 보화를 낭비할 것이다.
(본질인 악을 외면하고, 드러나는 현상만을 주목하면 윤리학자, 국가 경영자, 교육가들이 문제해결을 꾀하겠지만 그것은 마치 쓸데없는 주무름이란 뜻)
- 교회는 기도하는 허파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262항)